본문 바로가기
영화리뷰

[영화 리뷰] 버닝 (2018) — 무엇도 확신할 수 없는 세계에서, 분노는 어떻게 타오르는가

by jinsit 2026. 8. 30.

[영화 리뷰] 버닝 (2018) — 무엇도 확신할 수 없는 세계에서, 분노는 어떻게 타오르는가

기본 정보

감독/각본 이창동 (오정미 공동 각본)
원작 무라카미 하루키 단편 <헛간을 태우다> (윌리엄 포크너 <헛간 방화> 모티프)
주연 유아인(종수), 전종서(해미), 스티븐 연(벤)
개봉 2018년 5월 17일
주요 이력 제71회 칸 영화제 경쟁부문 초청, 제91회 아카데미 시상식 외국어영화상 부문 한국 출품작(1차 후보 진출)

왜 지금 다시 '버닝'인가

이창동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되짚다 보면 <오아시스> 못지않게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작품이 <버닝>입니다. <시>(2010) 이후 8년 만의 신작으로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됐던 이 영화는, 2026년 신작 '가능한 사랑'이 다시 베니스 경쟁부문에 오르기까지 이창동 감독이 걸어온 길의 중요한 이정표입니다. 특히 <버닝>과 '가능한 사랑' 사이에도 8년이라는 공백이 있다는 점에서, 이 감독에게 '8년'이라는 시간이 반복해서 등장하는 것도 흥미로운 우연입니다.


 

줄거리

유통회사 아르바이트생 종수(유아인)는 우연히 어릴 적 같은 동네에 살았던 해미(전종서)와 재회합니다. 두 사람은 가까워지고, 해미는 아프리카 여행을 떠나며 종수에게 자신이 기르는 고양이를 돌봐달라고 부탁합니다. 여행에서 돌아온 해미의 곁에는 벤(스티븐 연)이라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남자가 함께 있습니다. 이후 벤은 종수에게 자신만의 은밀한 취미를 고백하고, 그날부터 종수의 일상은 서서히 균열되기 시작합니다.

 

1. 미스터리인데, 정답이 없다

<버닝>은 스릴러의 구조를 빌려오지만 스릴러가 약속하는 해답을 끝내 내놓지 않습니다. 해미는 사라졌는가, 사라졌다면 어떻게 사라졌는가, 벤은 정말 위험한 인물인가. 영화는 이 모든 질문에 힌트만 던질 뿐 답을 확정 짓지 않습니다. 이창동 감독 스스로도 이 영화를 두고 "비닐하우스처럼, 들여다보면 투명해 보이지만 사실 아무것도 없다"는 식의 화법으로 설명한 바 있는데, 이 모호함이야말로 <버닝>의 가장 큰 힘입니다. 관객은 결말을 확인하는 대신, 영화가 끝난 뒤에도 계속해서 스스로 답을 찾으며 곱씹게 됩니다.

2. 세 배우, 세 개의 결

유아인이 연기하는 종수는 좀처럼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인물입니다. 감정을 폭발적으로 표현해온 이전 필모그래피와는 정반대의 방향인데, 그 절제된 무표정 안에 쌓여가는 열패감과 분노가 후반부에 이르러 터져 나오는 낙차가 이 영화의 정서적 핵심을 이룹니다.

전종서는 이 작품으로 데뷔했습니다. 소속사 계약 3일 만에 오디션을 봤고, 그 자리에서 곧바로 캐스팅됐다는 일화가 유명합니다. 해미라는, 삶의 의미를 향해 절박하게 손을 뻗지만 정작 누구에게도 온전히 이해받지 못하는 인물을 전종서는 신인답지 않은 자유로움으로 소화해 냅니다. 노을 속에서 춤을 추는 장면은 이 영화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명장면으로 남아 있습니다.

스티븐 연의 벤은 <버닝>을 지금까지도 회자되게 만드는 결정적 캐릭터입니다. 부유하고 여유로우며 늘 미소를 짓고 있지만, 그 표정 뒤에 무엇이 있는지는 끝내 짐작할 수 없습니다. 친절함과 섬뜩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이 인물은 해외 평단에서도 유독 큰 반향을 얻었고, 스티븐 연은 이 역할로 그해 다수의 매체가 꼽은 '올해의 조연'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습니다.

3. 계급이라는 보이지 않는 불꽃

<버닝>을 관통하는 또 하나의 축은 계급입니다. 파주의 낡은 집에서 트럭을 몰며 살아가는 종수와, 강남의 세련된 아파트에서 포르쉐를 타는 벤 사이에는 좁힐 수 없는 거리가 있습니다.

이 거리감은 직접적인 대사보다 공간과 사물을 통해 은근하게, 그러나 집요하게 드러납니다. 종수의 분노가 어디에서 비롯되는지를 이해하려면, 이 영화가 계속해서 비추는 두 세계의 낙차를 함께 읽어야 합니다.

 

4. 하루키에서 포크너로, 그리고 다시 이창동으로

원작인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 <헛간을 태우다>는 짧고 여운이 강한 소품에 가깝습니다. 이창동 감독은 여기에 윌리엄 포크너의 단편 <헛간 방화>가 지닌 계급적 긴장을 겹쳐 놓으면서, 원작에는 없던 한국 사회 특유의 청년 세대의 좌절과 무력감을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입니다.

 

두 원작을 알고 다시 보면, 이창동 감독이 무엇을 가져오고 무엇을 새로 써넣었는지가 더 선명하게 보입니다.


총평

<버닝>은 친절한 영화가 아닙니다. 명쾌한 결말도, 확실한 진실도 내어주지 않습니다. 그러나 바로 그 불확실함이 이 영화를 오랫동안 사람들의 머릿속에 남게 만드는 이유이기도 합니다. 무엇 하나 확신할 수 없는 세계에서 한 청년의 분노가 서서히, 그러나 되돌릴 수 없이 타오르는 과정을 이창동 감독은 끝까지 침착한 시선으로 따라갑니다.

 

<오아시스>가 사회의 시선 바깥으로 밀려난 존재를 정면으로 다뤘다면, <버닝>은 그 존재가 자신을 지우는 세계를 향해 조용히 분노를 축적해가는 이야기에 가깝습니다. 이창동 감독의 세계관이 시대에 따라 어떻게 변주되어 왔는지를 비교해보는 것도 이 영화를 감상하는 좋은 방법이 될 것입니다.

 

추천 대상: 정답이 정해지지 않은 열린 결말을 즐기는 관객, 스티븐 연·전종서의 초기 필모그래피가 궁금한 분 함께 보면 좋은 작품: 오아시스(2002), 가능한 사랑(2026, 개봉 예정)

댓글